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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일

	[re] 지금의 사태에 대한 질문

춧불집회와 가두시위가 계속되는 지금의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을 받고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사안이 중대해 가볍게 언급할 수는 없군요. 사태 전반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를 먼저 말하기로 합니다. 생극론의 정치철학을 제시하면서 오늘날의 문제를 고찰하고 해결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쓰다보니 너무 길어지고 몇 대목을 더 보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정치에 표면과 이면이 있습니다. 표면은 법으로 제도화하고, 선거로 선출된 담당자가 운영의 권한과 책임을 가진 공식화된 영역입니다. 이면은 다양한 형태의 여론 매체 또는 전달 수단을 매개로 움직이고 집단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하는 비공식적인 영역입니다. 표면과 이면은 균형을 이루고 보완하는 관계를 가지기를 바라지만, 불균형이 심해지고 지향점이 어긋나 충돌할 수 있습니다. 정치에 ‘좌’와 ‘우’또는 좌파와 우파가 있습니다. 상대방은 좌파 또는 우파라고 비난하고 자기는 그 어느 쪽도 아니며 순수하다고 하는 것은 좌파와 우파가 갈라져 있는 증거입니다. 좌파는 모두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친북좌파이니 몰아내야 한다고 외치고, 색깔논쟁을 하는 것은 군부독재 시절에 우파가 하던 추악한 짓이라고 극력 나무라기까지 할 만큼 싸움이 악화되어 있습니다. 좌피와 우파가 갈라져 있는 사실을 판단을 앞세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논의가 정상화됩니다. 극좌에 대한 반감으로 좌파를 단죄하고, 극우에 대한 혐오를 들어 우파를 매도하는 논법은 사용하는 쪽이 열세이게 합니다. 좌파와 우파가 갈라져 상극의 관계를 가지는 것은 잘못이 아니고 당연한 일입니다. 좌파나 우파 가운데 어느 하나는, 또는 둘 다 없어야 한다는 무리한 주장을 하지 말고, 현실을 현실대로 인정하고 둘의 다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둘은 상극이어서 상생일 수 있습니다. 좌파는 우파에 이기기 위해 우파에서 필요한 것을 받아들이고, 우파 또한 좌파에 이기기 위해 좌파에서 필요한 것을 받아들이면 상극이 상생이 됩니다. 그 결과 중도에 근접하거나 도달하기를 기대합니다. 나는 좌파와 우파를 함께 인정하고 비판하면서 넘어서는 중도에 서고자 합니다. 나를 두고 좌파는 우파라고, 우파는 좌파라고 비난해온 것이 중도로 인정된 증거입니다. 좌파냐 우파냐에 따라 정반대의 주장을 펴기까지 하는 판국에 중도가 있어야 사태를 바로 파악하고 시비를 가릴 수 있습니다. 기회주의적인 임기응변을 한다고 오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조상 전래의 지혜를 물려받아 내 학문의 기본원리로 삼는 생극론은 중도로 나아가기 위한 철학입니다. 우파에서 선호하는 상생을, 좌파에서 주장하는 상극과 합쳐 상생이 상극이고, 상극이 상생이게 하는 것이 요체입니다. 매일 밤 촛불집회와 가두시위가 계속되는 지금의 사태는 길게 말하면 복잡해지기만 합니다. 표면과 이면, 좌파와 우파를 좌표로 삼아야 명확하게 이해됩니다. 우파가 선거에서 승리해 표면을 차지한 것을 지나치게 평가하고 뜻한 바를 시급하게 실현하려고 하다가 실수하고, 좌파가 이면에서 조성되는 자연발생적 반감을 집결해 일제히 반격하게 되었습니다. 우파의 일방적인 우세를 깨고 양파가 균형을 이루다가, 마침내 좌파가 더 큰 힘을 가지는 데 이르렀습니다. 대통력직인수위원회에서 영어로 교육을 하겠다고 하고, 요직 인선을 친소관계에 따라 하고, 미국과의 소고기협상을 성급하게 추진하다가 실리가 손상되게 한 것이 누구나 알고 있는 실수입니다. 북한과의 관계 단절도 추가할 수 있습니다.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더 큰 실수는 표면만 장악하면 정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면을 무시한 것입니다. 인터넷 보급의 확대 등의 이유로 이면이 크게 성장한 것을 알지 못해 염려도 대비도 없었습니다. 텔레비전 특집방송을 먼저 내보내고, 어린 학생들이 촛불 집회를 열고, 일반 시민이 가세하고,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고, 종교계가 나서고 하는 순서로 진행된 움직임은 정확한 계산의 결과라고 하기는 어려우나 널리 모범이 될 만한 투쟁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표면의 대응은 무력해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 잘 알지 못하면서 이끌려 다녔습니다. 쇠고기 수입에 관한 추가협상을 해서 문제를 상당한 정도로 해결하고, 폭력 시위를 엄단하겠다는 것만으로는 사태를 역전시키기에 역부족입니다. 그 이상의 대책이 없어 난감하게 여기면서 시간의 경과나 기다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좌파가 승리하고 우파가 패배하고 있다고 이해하고 말 것은 아닙니다. 우파는 패배를 통해 얻은 것이 있습니다. 추가협상을 하기로 작정하고 유리하게 이끌 힘을 얻은 것이 뜻밖의 소득입니다. 스스로 할 수 없는 과업을 상대방의 공격을 이용해 성취했습니다. 씨름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효과가 일회용으로 그치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성급하게 추진하지 말고 여론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교훈을 다행히도 집권 초기에 얻어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더 큰 실수는 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좌파는 사태를 장악하고 있는 것 같지만 얻는 것이 없습니다. 쇠고기 추가협상을 규탄하고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하는데, 두 협상이 실질적으로는 그리 다르지 않고, 재협상은 혼자 한다고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재협상에서 미국과 충돌하면 득실이 어떨지 불분명합니다. 소리 높여 주장하는 바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고 국정 수행을 위해 더 나은 대안이라고 스스로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상대방에 주고자 하는 타격이 자기 쪽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정권퇴진을 주장하기까지 하는데, 대안이 무엇인지 더욱 의심스럽습니다. 대통령을 바꾸어 우파의 집권을 연장시키자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조금 전에 정권을 내놓은 통합민주의 재등장을 원하는가요? 통합민주당은 선거 패배를 자초한 과오를 청산할 겨를을 얻지 못했으며, 이번 사태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의 표면에서 야당 노릇을 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리고 이면의 집단행동에 가감해 몇 십 명의 인원을 보태기나 해서 존재의의를 잃고 있습니다. 표면에 대한 이면의 승리를 관철시키는 혁명을 일으킬 것인가요? 쇠고기 협상 실패를 이유로 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준비도 조직도 방향도 없는 혁명은 혼란이나 일으키다가 자멸을 가져올 따름입니다. 그것은 민족의 자멸이고, 역사의 자멸입니다. 역사에는 우연이 있다고 해도 운명의 장난이 이정도로 심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위의 여러 추정이 타당하지 않다면 해답이 하나만 남았습니다. 장차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 없이 사태를 계속 악화시켜 정부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요? 우파에 대한 좌파의 우위를 확보하고자 할지 모르나, 좌파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결과에 이릅니다. 정부가 무력해져 경제 파탄이 확대되면 손해가 좌파 지지자들에게 더욱 심각하게 닥칩니다.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도 정부가 정신을 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모욕을 주어 굴복하게 하자는 것은 아주 잘못된 계산입니다. 좌파는 사리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책임한 트집쟁이라고 이해되는 것이 결정적인 손해입니다. 이면의 집단행동은 승리를 구가하면서 패배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놀라운 수준의 투쟁 방식을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맞지 않게 사용해 낭비하고 있습니다.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더 크게 써야 합니다. 정부가 결정적인 잘못을 저지를 때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면서 활용해야 합니다. 세력 과시를 위한 기동훈련을 길게 하면 전열이 와해되고 불신이나 자아냅니다. 지금 좌파에서 해야 할 일은 명백합니다. 우파의 잘못을 시정하는 대안을 마련하고 실천 가능하게 가다듬어 다음의 집권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면의 역량으로 표면까지 바꾸는 최상의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다음에는 정권이 다시 교체되는 것이 순리입니다. 정권 교체를 바람직하게 이룩해 일을 잘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손해가 곧 자기 쪽의 이익이라는 놀부 심술은 예날 이야기이기나 해야 합니다. 이런 판단을 어느 지도자나 조직이 담당해 작전을 짜고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식견과 지식을 상당한 정도로 갖추었다고 인정되던 인사들도 군중을 이끌려고 하지 않고 뒤를 따르면서 지탄이나 면하려고 합니다. 군중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움직이는 우중이 되지 말고, 인식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깨닫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시위 군중의 범위를 넘어선 한층 광범위한 민중의 슬기로운 판단에서 최상의 강령이 도출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 같은 논의를 풍성하게 하면서 활발한 토론을 전개해야 합니다. 우선 이 글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누구든지 퍼날라가 화제에 올리기를 기대합니다. 정권 교체가 혼미를 다시 가져오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악몽입니다. 좌우 양파가 실수 경쟁을 계속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태가 그 반대로 전개되어 더 큰 희망을 실현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좌파와 우파의 상극을 상생으로 만들어 중도를 실현하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하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거듭되던 시련을 이겨내고 이제 생기가 돌고 의욕이 넘치는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세계를 선도하는 발상과 창조를 다채롭게 마련해 빛나는 미래를 맞이하려고 합니다. 상극이 상생이게 하는 작업을 광범위하게 벌여 이룩하는 성과입니다. 그런데 오직 정치의 좌ㆍ우 양파는 상생이 상극이게 하는 악습을 버리지 못하는 책임을 서로 전가하면서 함께 제동을 걸어 후퇴를 강요하니 통탄할 일입니다. IP Address : 222.237.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