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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기석

	갈래이론 탐구 결과에 대한 공유 등

조동일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지난번에 ‘갈래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과제앞에서 이리 저리 해메는 도중 선생님께 질문을 드렸던 대학생 강기석입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지난번에 주신 답변과 이메일, 또한 선생님의 여러 저작과 유튜브 강의 등을 통해 큰 도움을 받았고 이제 과제에 써먹을 정도의 ‘탐구’는 어느정도 진행된 듯 싶습니다. 다만 도움을 받아 탐구한 결과이기에 그 결과를 공유드리고도 싶고 탐구를 계속하면서 과제와 상관 없는 궁금증도 많이 생기기도 해서 이렇게 다시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적어놓고 보니 제가 모르는 것도 너무 많은 듯 하고 또한 그래서 그런지 글이 맥아리가 없고 쓸 데 없이 길기만 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번처럼 가볍게 한번 읽어주시고 답할 가치가 있는 부분이 있다면 답변 주시고 답할 가치가 없거나 혹은 답을 안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낫겠다 싶은 부분은 넘어가주시고 그러신다면 큰 도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0. 우선적으로 제가 ‘갈래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과제를 마주하여 여러 탐구를 거쳐서 도달한 결론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문학연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갈래론(장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시작되어, 헤겔을 비롯한 서양의 여러 평론가와 이론가들을 거쳐서 주관성과 객관성을 원리로 하는 ‘서정/극/서사’의 3분류법으로 고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3분류법을 국문학에 적용했을 때, 세 분류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 작품들이 많았고 이에 문제의식을 가진 국문학자 ‘조동일’은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원리로 하는 4분류법을 도입하기를 주장했습니다. 이 4분류법에 따르면 문학 작품들은 자아와 세계가 대립하느냐 합치되느냐에 따라 전자는 서사/극, 후자는 시/교술로 나누어지고 이 중 서사/극은 작품 외적 자아(보통, 서술자)가 개입하냐 여부에 따라, 시/교술은 세계가 자아화 되는지 혹은 자아가 세계화 되는지 여부에 따라 각각의 ‘갈래’로 나누어집니다. 조동일은 가능한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모두 고찰하는 연역적 방식과 실제 국문학 자료들을 연구하는 귀납적 방식 모두를 거쳐 갈래론을 만들었으며, 여기서 그치지 않고 확립된 이론을 세계문학 자료들에 적용하는 시도를 하는 등 국문학에만 한정된 이론을 만들기를 거부하고 세계문학을 국문학으로서 이해하고 국문학 또한 세계문학 속에서 이해하자는 주장을 했습니다. 현재는 조동일의 분류법이 국문학계에서 인정을 받아 통설이 되었습니다. 이런 ‘갈래론’이라는 것들의 문학연구에서 의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쨰, 갈래론은 단순히 작품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대한 고민 뿐만 아니라 작품의 가장 근본적인 형성 원리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답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로서, 갈래론을 정립함으로서 “문학작품의 구조를 깊이 있게 투시하고 (...) (문학에 대한) 이론을 마련하는 데 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 갈래론을 정립하면 적절한 문학 연구의 단위가 설정되어, 단순히 개별적인 작가들이나 문학 작품들을 나열하거나, 혹은 인위적인 역사적 연대를 설정할 때 보다 더욱 효과적이고 문학 답게 연구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문학교육이란 학생들이 문학을 주체적으로 향유하고 즐기기 위한 능력과 기본지식을 쌓게 하는 교육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문학연구적 의의를 지닌 갈래론은 문학교육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교육 현장에서 구현되는 갈래, 혹은 갈래론의 양상을 볼 때 갈래론의 이런 의의는 현재 실현되고 있지 않습니다. 현재 교육 현장에서 갈래에 대한 교육은, 장르류에 대한 것들, 예컨데 각 장르류의 원리는 무엇이며 특징은 무엇인지에 대한 그런 것들, 이 아니며, 가사는 율격이 어떻니 시조는 음보가 어떻니 하는 ‘장르종’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주입하는 데에 그쳐서 문학작품을 깊이 있게 투시하게 해주기는 커녕 단순한 분류학적 지식으로만 다뤄 학생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육현장에서는 갈래에 대한 지식을 얄팍한 술수로서 사용해 대입 시험(수능)에서 어떤 갈래의 작품이 나오고 나오지 않고를 나눠, 예컨데 반드시 수능에서 어렵게 나오는 시와 소설 등은 힘을 주어 가르치고 해외 문학 작품이나 최근에 새롭게 만들어진 갈래의 문학 작품들(유튜브를 이용한 영상과 결합된 시 등)은 적게 가르치거나 아예 가르치지 않는 등의 꼼수를 부려서, 적절한 문학의 단위가 되기 위한 갈래론을 오히려 포함과 배제의 기준으로서 사용해 적절하지 않은 문학의 단위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이런 문제점들을 타파하기 위해 저와 저희 조는 장르류의 특성에 대해 가르치되,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불필요한 과한 이론 강의가 되지 않기 위해 제시된 작품을 읽고 그 특성을 토의해본다든가 다른 장르류의 작품으로 바꿔 써본다든가 하는 활동을 주로 하여서 지식을 습득시키고, 이렇게 습득된 지식을 고전시가와 현대시와 최근의 노랫말을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갈래가 어떻게 변하고 또 어떻게 변하지 않는지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학생들을 가르칠 것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이번 탐구를 통해 도달한 결론입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가르침을 받아 생각이 여기까지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드리면 보람있을 것 같아서 적어봤습니다. 아주 틀린 부분이나 선생님께 거슬릴만한 부분은 없도록 노력했지만, 혹여나 있다면 지적해주셔도 아주 감사할 것 같습니다. 1. 특별한 인물의 등장 없이 화자의 인식만 나오는 ‘서정’ 갈래를 제외한다면, 자아는 인물이라고 봐도 괜찮을까요? 제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자아는 인식과 행동의 주체입니다. 그런데 국순전 등 일부 우화를 제외하면 인식과 행동의 주체는 당연히 사람일 것이며, 우화에서 사물이나 동식물이 인식과 행동의 주체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들도 등장인물 취급 받을 것이기에, 결국 ‘자아=인물’이라고 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해한 바에서 틀린 부분이 있을까요? 2. 선생님의 책과 유튜브 강의를 보니, 선생님께서는 서정 서사 극 교술 등의 용어보다, 사실은은 노래하기, 이야기하기, 보여주기, 알려주기의 이름이 더 나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듣지 못한 것 같고, 또한 갈래에 대해 조사하다보니 이남호 선생을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가령 시는 노래가 아니라 노래의 가사와 관계가 있으며 심지어 현대의 수많은 자유시들은 노래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시피 한 점을 들며 노래하기와 같은 용어보다 서정과 같은 용어가 더 적절하다는 지적을 하고있었습니다. 제 낮은 수준으로 보기에는 이런 지적이 맞는 듯 싶은데, 선생님께서는 어떤 뜻으로 단순한 한자어가 아닌 우리말로 풀어쓴 용어들이 낫다고 판단하셨는지 궁금합니다. 3. 선생님의 책과 유튜브 강의(4-1강)에서, 선생님께서는 ‘갈라져있다’는 뜻의 ‘갈래’라는 용어를 도입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종류에 비한 갈래라는 용어의 이점을 잘 모르겠고 책에서도 이것의 이점을 잘 찾지 못했습니다. 혹시 관련해서 알려주실 게 있을까요? 4. 선생님의 홈페이지에서 다양한 글들을 봤는데, 그 중 <점령군과 해방군>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글을 읽기 시작한 처음에는 단순한 정치적 해프닝을 소재로 한 글이기에 모 대선후보의 잘잘못을 가리는 수준의 글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제 예상과는 반대로 그 해프닝에서 어떤 일반론적인 깨달음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글이 매듭지어져서 조금 놀랐습니다. 짧지만 깊이가 있는 글이었던 듯 싶습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글에서 “북쪽에 온 소련군은 해방군이었다는 말이다”고 가정했던 부분을 해당 대선후보가 정면으로 부정했다는 사실입니다. 해당 발언을 한 대선후보는 해당 발언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미군이 일본에 대항해 점령하러 온 점령군임은 역사적인 사실이며 소련군 또한 같은 기준을 통해 점령군이었다. 본인은 일본에 충성을 바치다가 해방 후에는 돌이켜 점령군인 미군에게 붙어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한 친일파들을 비판하기 위한 발언을 한 것일 뿐인데 이를 소련군이 해방군이라고 발언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라고 해명하였습니다. 해당 대선후보의 이런 해명이 진짜인지, 혹은 논란이 거세지자 즉석에서 지어낸 거짓말일지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다만 일단은 이런 해명이 진짜라고 가정하고, 선생님 또한 이를 받아들여서 글을 다시 쓰신다면 <해방군과 점령군>이라는 글의 결론이 달라질지, 달라졌다면 어떻게 달라질지 호기심이 듭니다. 번외. 선생님의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다가 선생님께서 그리신 그림 또한 보게되었는데, 그 중 281번 작품 <광막산해>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림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합니다. 동양화에 대해선 더욱 그렇습니다. 다만 사진에는 취미가 약간 있습니다. 사진작가들 사이에는 ‘수직과 수평을 잘 잡아라’라는 조언이 있습니다. 사진의 기준이 되는 수평선과 수직선을 비뚤어지지 않게 잘 잡으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안정적이고 정갈한 느낌의 사진이 됩니다. 가령, 지평선이 나오는 풍경 사진을 찍을 때는 이 지평선이 사진의 정확한 수평선이 되도록 찍어야 하고, 어떤 빌딩을 찍을 때는 그 빌딩이 사진의 정확한 수직선이 되도록 찍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281번 작품은 제법 불안정합니다. 그림의 기본이 되는 수평선이 비뚤어져있습니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바다가 오른쪽으로 쏟아질 듯 보입니다. 그리고 바다는, 비록 쏟아져 내리지는 않지만 그에 못지 않게 허여멀겋게 거품을 내뿜으며 절벽과 산을 집어 삼키기라도 하려는 듯 파도를 쳐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바다를 뚫기라도 하는 듯 작은 곶 하나가 있고, 또 그 위에는 곶에 혹이라도 하나 난 듯 그 곶보다도 훨씬 작은 사람이 위태로이, 가소로이 서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소로운 사람은, 바다와 산 마저도 비뚤은 이 그림의 유일한 수직 요소로서 그림 전체를 지탱합니다. 이 그림의 역설적인 구조가, 세계와 맞서려는 개인의, 혹은 자아의 올바른 방향성을 함축적으로 제시하는 듯 합니다. 좋은 그림을 공유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IP Address : 89.187.1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