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다 글을 쓰려면 이름을 밝히고, 자기 소개를 하고, 한글 맞춤법과 언어예절을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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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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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카타르시스, 라사, 신명풀이를 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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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뎐>과 <취화선>에는 신명풀이를 일으키는 요소나 기법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을 구성하는 내용 자체는 너무나도 단조롭고 평면적입니다. 배경이 되는 경치를 잘 만들고 판소리를 삽입하는 등의 수법으로 흥미를 끄는 것은 부차적인 방법입니다. 작품의 가치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 <춘향뎐>에서 한 예를 들면, 변학도의 명령을 받고 번수들이 춘향 잡으러 가는 대목에서 비탄에 잡겼던 춘향이 반색을 하면서 번수들을 맞이하고 다정한 말로 마음을 녹여 번수들이 그냥 돌아서게 하지 않고 월매가 돈으로 매수하게 해서 원작 을 망쳤습니다. 춘향의 다면적인 성격을 함부로 단순화하고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 을 상식 수준으로 끌어내렸습니다. 오늘날의 관객도 변학도가 춘향의 미모를 탐내듯이 춘향을 구경하라고 하는 처사입니다. 춘향이 겪는 치열한 삶은 무시하고 춘향을 물건처럼 취급하면서 좋아한다면 영화를 만든 사람이나 보는 사람도 변학도와 다를 바 없습니다. 변학도를 나무랄 자격이 없습니다. 변학도에 대해서 반감을 가진다면, 그것은 질투일 따름입니다. <취화선>에서 장승업에게 예술 세계로 안내하고 그림의 원리를 가르치는 선비가 있어 장승업이 스스로 고민하는 것이 바보스럽게 되었습니다. 야단스럽게 성행위하는 장면을 자주 넣어 장승업의 거동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환쟁이는 어리석고 선비는 슬기롭다는 헛된 관념을 재확인하니 개탄할 일입니다. 장승업을 멸시하고 괴상하게 여기던 그 당대 잘난 사람들의 허세를 옳게 여기도록 합니다. 영화에 나오는 장승업의 그림이 기운생동하는 맛은 전혀 없는 가짜라는 것도 큰 잘못입니다. 장승업의 번민과 환희를 그림에서 생동하게 보여주지 않아 장승업이 무엇을 한 사람인지 끝내 이해할 수 없게 했습니다. 장승업이 알았으면 통곡할 일입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전혀 들려주지 않고 살리에르라도 손쉽게 작곡할 수 있는 유사품을 이용해 <아마데우스>를 다시 만들면 어떻게 될까요 ? 모차르트 또한 장승업처럼 단순한 바보가 되고 맙니다. 범속한 일을 야단스럽게 하는 별난 사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리석음은 멸시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잘났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예술가에 대해서 그런 관심을 가지면서 근심도 하고 동정도 하는 풍조에 대해서 진정한 예술작품은 철퇴를 내립니다. 그런 작품을 보거나 듣거나 읽으면 온몸이 전율하는 것이 그 때문입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음악도, 미케란젤로의 조각이나 고호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춘향전>> 원작도, 장승업의 그림도, 진정한 명창의 판소리도 그런 경지의 예술입니다. 그런데 임권택의 영화에 들어가면 모두 생기를 잃습니다. 화려한 경치, 떠들석한 행진, 크게 울리는 소리 같은 것들의 겉치레에 질려 숨을 쉬기 어렵게 됩니다. 임권택의 영화은 위대한 예술이기를 바라는 기대를 짓밟고 예술 훼손하기를 능사로 삼아 예술가를 조롱하면서 흥미거리로 삼는 사람들의 편에 섭니다. 춘향이나 장승업이 자기 삶을 개척하는 주역이 되고 고민하고 충돌하는 데 자기도 같은 처지라고 생각하는 관중이 분노하면서 동참해야 진정한 신명풀이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막고 밖에서만 놀게 해서 신명풀이가 겉돌게 했습니다. 전통예술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구경거리로나 이용해 관심을 끌고자 하는 소재주의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탈춤 추는 장면을 그리면 전통을 살린 그림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전에 만든 <서편제>와 함께 이 두 작품도 무얼 모르는 관객이나 한국예술을 과소평가하던 외국인이 신기한 구경거리라는 이유에서 관심을 가질 수는 있어도 그것이 작품의 가치는 아닙니다. 임권택감독이 자기 생각대로 작품을 꾸준이 만든 그 끈기와 정열은 높이 평가합니다.훌륭한 본보기를 보였으므로 치열한 논의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임권택의 한계를 알아야 다음 사람은 더 나아갑니다. 태산이 앞을 가려 갈 길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염려할 것은 아닙니다. 근래 본 영화 가운데 <집으로>는 진정한 예술작품입니다. 신명풀이를 최대한의 방법을 사용해 극도로 막아 신명풀이에 불을 붙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반어가 너무나도 훌륭해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임권택은 잘못 하고 나는 잘 났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해온 학문연구도 극복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내가 스스로 알지 못하고 논할 것이 아니므로, 내가 임권택에 관해 말하듯이 내 학문에 대해 말하는 후진이 나와야 합니다. 나무라는 글을 읽고 내가 생각을 바꿀 것은 아닙니다. 그 글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고 다음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소용됩니다. 방향 전환을 위한 주장보다 실제 작업이 더욱 소중합니다. 너무 많은 논저를 내서 장황한 논의를 편 수다스러움을 <집으로>처럼 절제되고 집약된 언사를 써서 일거에 뒤집는 가장 고결한 시인 수준의 학자가 나오리라고 기대해봅니다. 좋은 질문 덕분에 오랫만에 신명나는 글을 썼습니다. 질문자와 내가 만나 지금 신명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기분이 아주 좋아 이 글을 읽고 또 읽고 고칩니다. 그러나 자화자찬은 해롭습니다. 질문자나 다른 사람이 자화자찬을 깨우쳐주는 놀라운 말을 다시 던지면 소스라쳐 놀라 이 글이 잘못되었다고 고백하고 다시 응답하겠습니다. 그깨까지는 혼자 춤을 추고 있다면 슬픈 일입니다. 신명풀이는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IP Address : 211.211.1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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