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론을 하지 않고 학문을 하므로 평론에서 거론하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업종이 다르니 거기서 찾지 말아야 합니다.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연구와 직접 관련된 기존 연구는 반드시 검토하는데, 내가 근래에 하는 것과 같은 총체적인 작업을 소임으로 삼는 후학이 거의 없어 내 저작이 시야 밖에 머무릅니다. 그래서 요즈음 업적 평가의 척도로 삼는 인용 지수란 것이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년 후에 업적 점수가 필요하지 않게 되어 연구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대학이나 대학원의 전공과목에서 취급하는 범위를 많이 넘어서서 교재가 되지 못합니다. 준비를 갖추고 흥미를 가지는 교수가 나서지 않아, 학제간의 접근을 표방하는 교양과목에서도 빛을 볼 기회가 없습니다. 이론은 수입해야 한다는 불문율을 어기고 창조학을 한다고 하기 때문에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멀리 흩어져 있는 생소한 사안을 너무 많이 거론하고, 전개하는 견해가 전무후무해 대중강연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잘 정리된 기존의 지식을 가볍게 정리해 편안하게 즐기도록 하지 못하므로 인문학이 큰 호응을 얻는 데 동참하지 못합니다. 인문학석학강좌라는 것에 가담하라는 요청을 받았다가 내 학설을 전개하는 위험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그만두기로 한 적이 있습니다. 경음악을 듣겠다는데 교향곡을 내밀려고 한 것이 착각인 줄 알고 물러났습니다.
언론은 학문의 가치와는 무관한 대중적인 인기를 관심의 대상으로 삼아 즐겨 거론하고 , 또한 그 인기에 편승하고자 합니다. 연구의 가치는 알아내기 어렵고, 알아낸다 해도 널리 이용할 만한 화젯거리가 되지 않으니 상대하지 않고 수고를 아낍니다. 먼 곳에서 대단한 연구가 나왔다는 소문이 요란하게 전해지면 유행에 뒤질세라 다투어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 연구는 너무 가까이 있어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 그대로 무시됩니다.
이런 몇 가지 이유가 겹쳐 <<문학사는 어디로>>도 거론되지 않고 넘어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유감이 아닙니다. 넓고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진지하게 독서하는 소수의 탐구자들, 지금과는 다른 장래의 학자들과 내밀하게 만나 조용하면서도 진지한 토론을 할 것을 기대합니다. 미래를 위한 책을 쓰고자 했으므로 뜻한 바가 실현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학문이 달라지고 대학이 바뀌도록 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을 보람으로 삼고 다음 작업을 더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선진화를 위해 힘쓰겠다는 것만 아닙니다. 근대에 조성된 위기를 타개하고 인류가 나아갈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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