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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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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 구비서사시의 양상과 변천>> (문학과지성사, 1997)

펴낸날: 1997년 10월 25일 저 자: 조동일 펴낸이: 김병석 펴낸곳: 문학과 지성사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63-13호 무원 빌딩 (121-210) 등 록: 1993.12.16. 제10-918호 편 집: 338-7224/5 FAX 323-4180 영 업: 338-7222/3 FAX 338-7221 ISBN 89-320-0957-0 값 17000원 시작하는 말 이 책은 세계문학사의 이론 정립을 위한 일련의 저서 가운데 세 번째 것이다. 『인문학문의 사명』(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1797)이라고 한 첫째권에서 연구의 방향 전환을 위한 총론을, 『카타르시스·라사·신명풀이』(서을 지식산업사,197)라고 한둘째권에서 연극론을 전개하는 데 이어서, 여기서는 서사시를 다룬다. 연극 ·서사시 ·서정시는 세계문학사 서술의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서 반드시 고찰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기본 영역이므로, 하나씩 차례로 검토하는 작업을 하다가 이제 서사시에 이르렀다. 다음 순서로 쓰는 책에서는 서정시를 논의의 중심에다 둘 작정이다 선행 저서 『카타르시스 ·라사· 신명풀이』에서는 연극미학에 관한 그릇된 견해를 바로잡았다. 고대그리스연극의 '카타르시스'가 연극 미학의 유일 또는 최상의 원리라는 주장을 비판하고, '카타르시스'는 다른두가지 원리인 '라사 · '신명풀이'와 함께 인류의 연극문화를 다양하게 하는 구실을 해왔음을 밝혔다. '라사'의 본보기로는 중세인도의 산스크리트연극을, '신명풀이'의 본보기로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의 한국민속극을 들었다. 그 셋을 비교연구를 위한 예증으로 삼아 세계연극사 전개의 전체적인 과정을 밝히고, 연극을 영화로 계승하는 데 따르는 이론과 실천의 문제까지 광범위하게 다루었다 그 작업은 이 책에서 하는 일과 바로 연결된다. 고대그리스연극을 세계연극의 전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과 함께, 고대그리스의 서사시에 근거를둔 서사시의 개념을 세계 어느곳에서도 일제히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세계문학사 이해를 그릇되게 만드는 억지이다. 고대 그리스 서사시만 '진정한 서사시' 이므로, 다른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의 작품이든 그것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가 가려 서사시 여부를 판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직까지 세계 도처에 남아 있고, 우리 주변에서도 불식되지 않았다. 그런 잘못을 바로잡는 전면적인 대안을 제시해 세계서사시의 역사를 실상대로 서술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여서 이책을 쓴다. 고대그리스의 서사시에서 유래한 선입견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일을 시작할 수 업으므로, 서사시가 무엇인가 정의를 내리는 일부터 다시 하는 수고를 아낄 수 없다.1) 고대그리스서사시에 맞추어 이해하는 것이 잘못임을 밝혀 논하는 논문을 몇 편 발표했어도,2) 혼란을 시정하는 데는 역부족임을 절감한다. 그러나 자세한 내용은 그쪽으로 미루고, 가장 요긴한 대목만 되풀이해서 말하기로 한다. 고대그리스의 서사시가 서사시의 전범이라고 하는 관습을 이어온 유럽문명권 각국의 서사시론은 우선 용어 사용에 차질이 있어, 받아 들여 이용하기 어렵다. 'epic'이라는 영어 용어는 때로는 '서사문학' 드물게는 '사사문학인 시'를, 대개의 경우에는 '영웅서사시'를 지칭해서 의미 영역이 일정하지 않고 개념 규정을 둘러싼 논란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 여러 겹의 혼란에 빠져 있다. 프랑스어의 'epopfe'와 독일어의 'Epos'는 '영웅서사시'를 뜻하고 있어 의미가 분명한 편이지만, '서사문학인 시'를 지칭하는 말은 별도로 없어 불편하다 '서사문학'이라는상위 개념, '서사문학인 시'라는하위 개념, '영웅서사시'라는 그 하위 개념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그것들을 각기 지칭하는 총어가 있어야 이론 정립을 차질없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유럽문명권 각국의 용어를 사용해서는 그렇게 할 수 언다. 마땅한 용어가 없어 삼단계 구분론을 전개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대안이 되는 기본 용어를 우리말에서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고 정당하다. 유럽문명권 밖의 다른 여러 문명권, 많은 나라에서는 용어 정립을 분명하게 해서 세계문학 일반론을 이룩하는 데 함께 기여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동아시아에서도 그렇게 하는 데 적극 참여해 유럽문명권에서 생긴 혼란을 시정하는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중간 등급의 '서사문학인 시'를 '서사시'라고 약칭하면, '서사문학' · '서사시' · '영웅서사시'를 단계적으로 구분하는 용어가 명확하게 정립된다. '서사'를 공통되게 사용하면서 앞뒤에 다른 말을 붙일 수 있는 한자어의 조어법이 이 경우에 크게 유용하다. '서사문학인 시' 또는 '율문 형식을 갖추고 있는 서사문학'이 '서사시' 이다. 그런 단순하고 명백한 용어를 사용하면,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든 세계의 모든 서사시를 무리없이 포괄해 고찰할 수 있다. 영웅서사시라야 서사시일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영웅 서사시는 서사시의 하나이다. 영웅서사시와 대등한 위치에 놓일 수 있는 다른 어떤 서사시가 몇 가지나 더 있는가는 서사시의 개념 규정을 위한 선결 과제가 아니므로, 장차 본론에서 다루기로 한다. '서사시'라는 말은 유럽문명권에서 가져온 용어의 번역으로 생겨 났다. 일본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번역어가 동아시아 한문문명권에서 널리 퍼져 일제히 통용되고 있다. 다소의 혼란과 차질이 있기는 하지만, 구태여 밝혀내 길게 나무랄 일은 아니고, 계속 사용하면서 의미 규정을 잘하면 된다 남의 것을 가져와서 이미 자기 것을 만들었는데도 자기 것인 줄 모르고 있으면 어리석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서사문학'· '서사시' · '영웅서사시'의 구분은 이미 독자적인 용어로 정착되었으며 , 유럽문명권의 언어로 옮겨 전달하기 어렵다. 번역어는 원어의 의미에서 이탈하지 않게 사용해야 한다든가, 번역이 잘못되었으니 고치자고 하든가, 남의 용어를 번역해서 사용한 것이 잘못이니 재래의 용어를 찾아내자든가, 전혀 새로운 용어를 창안해야 한다든가 하는 것이 문학이론을 바로잡는 데 그리 긴요하지 않다. 씨름에다 견주어 말하면 샅바 싸움에 지나지 않는 용어 시비로 세월을 보내면서 정력을 소모하고, 독자를 곤혹스럽게 하다가, 정작 본론은 전개하지 못하고 마는 잘못을 경계해야 한다. 이미 통용되고 있는 용어는 과거를 묻지 말고 받아들여 잘 쓰는 것이 현명한 방책이다. 서사시는 어떤 용어를 어떻게 번역한 말인가 하는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그 비슷한 문제를 가진 다른 용어가 모두 그렇지만, '서사시'를 번역어로 생각하지 말고 그 자체가 독자적인 용어 라고 하고, 지칭하는 대상과 합치되게 개념을 다시 규정해서 사용하면 된다. 한국, 동아시아 각국, 세계 도처에 '서사문학인 시' 가 있으니, '서사시'라는 용어를 그런 의미로 사용하면서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 합당하다. 이렇게 말하면 '서사문학인 시'라고 할 때의 '서사'란 도대체 무엇이냐 하고 따지고 드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서사'의 개념을 알아야 '서사시'를 구별해 낼 수 있으므로 그렇게 말하는 데 대해서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점에 관해서, '서사'란 "자아와 세계의 대결"인 점에서 서정이나 교술과 다르고, "작품 외적 자아'가 개입하는 점에서는 희곡과 다르므로, "작품 외적 자아의 개입에 의해 전개되는 자아와 세계의 대결"이라고 규정될 수 있다는 이론을 이미 전개했다.3) 이렇게 말하면 '자아는 무엇이고 '세계'는 무엇인가 하는 등의 질문이 다시 나을 수 있는데, 여기서 감당하지 않고 기존의 작업으로 미루고자 한다. 서사시를 논하면서 너무 어렵고 복잡한 생각부터 하는 것은 잘못 이다. 고답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문학이론을 전개하다가 모든 이론의 유일한 근거가 되는 사실 자체를 망각하거나 왜곡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지구상에서 살아온 수많은 사람은 각기 자기 나름대로 서사시를 짓고, 노래하고, 이어받고, 즐겨왔다. 서사시는 문학의 기본 갈래의 하나로서 세계 도처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므로, 그 전체를 포괄해서 이해해야 한다. 서사시를 기록하고 장편을 만들었는가 하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세계명작이라고 할 것만 가려내서 평가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서사시는 구비서사시에서 시작되고, 구비서사시로 전승되고, 구비서사시로 향유되고 있다. 그 점을 확인하는 데서 서사시에 관한 새로운 연구가 시작된다. 가까이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구비서사시를 먼저 찾아 서사시가 무엇인가 생생하게 이해한 다음, 그 능력과 밑천을 가지고 멀리까지 나아가는 것이 현명하다. 그런 원칙에 따라서 작업 의 순서와 방법을 정한다. 한국의 구비서사시를 동아시아 이웃 민족들의 구비서사시와 비교해서 연구하는 것이 이 책의 기본적인 과제이다 거기서 시작한 논의를 차츰 확대해서, 구비서사시가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관한 세계적인 비교론을 전개하는 데까지 이르고자 한다. 그렇게 해서 한국문학사 ·동아시아문학사 ·세계문학사를 서로 관련시켜 새롭게 이해하는 길을 찾고자 한다. 구비서사시는 그 자체가 신화이거나 신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신화 연구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한국에는 다른 신화가 별반 없으므로 서사무가를 무속신화로 다루어 신화 연구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 그러나 신화는 문학사의 한 시기의 산물이지만, 서사시는 문학사의 전개와 더불어 계속 변해왔다 한국의 서사무가를 구비서사시로 이해하면서 그 양상과 변천을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해서 고찰해야 문학사 연구의 새로운 시야를 크게 열 수 있다. 구비서사시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한국에 구비서사시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국서사시가 흘로 대단하다고 하자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자료를 통해서 구비서사시의 실상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을 기르고서,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사시를 함께 다루어 서사시의 역사를 밝히는 이론 정립을 시도한다. 그 성과를 다른 문명권, 여러 민족의 사례에 널리 적용해서 세계 서사시사의 일반 이론을 마련하는 데까지 이르고자 한다. 세계서사시를 모두 모아놓고 균등한 밀도로 다루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자료를 구하기 쉽고, 읽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적은 것은 근경에다 두어 자세하게 살피고, 그렇지 못한 것은 원경에다 배치해놓고 대강 살필 수밖에 없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인식상의 원근이 결코 가치의 우열은 아니다. 가까이 있는 것만 대단하다고 여기는 자기중심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 광범위한 비교연구가 필요하지만, 멀리 있는 것까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가까이 있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가까이 있는 것은 친숙하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잘못을 멀리 있는 것을 가져와서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서사시 연구뿐만 아니라 다른 유사한 작업에서도 함께 사용할 유용하고 타당한 방법임을 명확하게 하자. 이 책에서 다루는 자료를 원근에 따라서 나누어 동심원을 그릴 수 있다 그 내역을 다음항목의 '취급지역 분포'에서 도표로 나타내기로 한다. 동심원의 한가운데에 제주도 서사무가가 있다. 한국 본토의 구비서사시는 두 번째 순서로 등장한다. 그 다음에는 중국과 일본에서 전해지고 있는 서사시가 있다. 그 두 나라 여러 소수민족의 서사시를 먼저 다룬 다음에, 지배민족의 자료를 고찰한다 거기까지가 고유한 의미의 동아시아 또는 협의의 동아시아이다. 몽골·티베트·터키민족군4)의 서사시가 다음 차례로 등장한다. 중국 서북쪽 및 그 인근 지역의 터키민족군은 몽골민족이나 티베트민족과 깊은 관련을 가져 함께 다루어야 한다. 그들 민족은 중세 때의 공동문어를 들어 구분하면, 한문문화권 밖에 자리잡고 있어 협의의 동아시아의 범위를 넘어선 광의의 동아시아에 속한다. 지리적인 위치를 들어 말하면, 내륙아시아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어떻게 일컫든, 그쪽은 동아시아의 가까운 이웃이며, 세계 다른 곳에서 비슷한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서사시를 풍부하게 지녀 깊은 관심을 가져 마땅하다. 거기 이어서 동아시아와 다른 쪽에 인접한 지역인 동남아시아 및 남아시아 쪽으로 관심을 확대한다. 필리핀 타이 ·인도의 경우를 예증으로 들어 , 그쪽 서사시의 특징을 동아시아의 경우와 비교해서 고찰한다. 인도에는 수많은 서사시가 있어 자료가 풍부하다. 그렇지만 구비서사시의 내력을 분명하게 나타내주는 사례가 특히 긴요해 그런것을 남쪽의 타밀 지방과 서북쪽의 라자스탄 지방에서 찾기로 한다. 비교연구의 확장을 위한 자료를 다른 대륙에까지 가서 찾는다. 아프리카 니양가, 하와이, 미주대륙 끼체, 그리고 서남아시아 바빌로니아의 서사시를 들어 , 서사시 형성과 변천의 공통된 양상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를 구체화한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서사시의 역사를 이해하는 일반론을 정립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이다. 지구상의 다른 여러 지역의 서사시를 모두 들어 논할 때 유럽의 서사시를 비로소 등장시키기로 한다 유럽의 서사시는 서사시론의 일차적인 논거로 하지 말고 다른 여러 곳의 자료를 널리 고찰해 정립한 이론을 적용해서 검증하는 대상으로 삼아야 유럽문명권중심주의의 선입견을 청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문명권의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포위 공격의 작전을 펴야, 차등의 세계상을 대등의 세계상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 세계서사시의 역사에 관한 일반 이론 제시를 도달점으로 하면서 책 표제를 『동아시아 구비서사시의 양상과 변천』이라고 한 것은 한국서사시 · 동아시아서사시 · 세계서사시의 셋을 연결시키는 중간 고리인 동아시아서사시를 해명하는 데 특히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자료를 이용하고 연구 업적을 참고로 하는 데서도 널은 의미의 동아시아의 범위 안에 드는 것들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까지는 소략함을 면할 수 있었으나, 세계 전체를 그렇게 하는 것은 가능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의 역량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질러놓고서, 중간 단계까지나마 어느 정도 수습하려고 한다. 동아시아 구비서사시 연구를 통해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세계 문학사 전체에 관한 것이다. 서사시의 역사에서 원시서사시, 고대서사시, 중세서사시,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서사시가 어떻게 달라 졌던가 밝혀, 세계문학사의 시대 구분을 근거 있게 하는 방안을 마련 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는다. 시대에 따른 변화가 왜 일어나고 어떻게 나타났는가 밝혀 , 문학사 이해의 이론을 심화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서사시가 민족에 따라서 풍성하기도 하고 빈약하기도 한 차 이점이 생기는 이유를 찾는 데도 힘쓴다. 서사시의 역사는 어디서나 기본적인 동질성이 있다 해도, 지역에 따라 다른 차이가 적지 않다 한국 안에서도 구비서사시가 제주도에는 풍성하고 본토는 그렇지 못하다. 아이누서사시는 대단하지만 일본서사시는 있는가 의문이다. 중국의 여러 소수민족, 또는 몽골·티베트 ·터키민족군은 온 세계에 크게 자랑할 만한 서사시를 갖추고 있는 것과 판이하게, 한족(韓族)의 중국인에게는 서사시라고 할 것이 별반 없다. 이러한 차이점이 왜 생겼는가 하는 의문을 밝히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그런 의문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해답은 정치적인 승패와 서사시의 풍성함은 서로 어긋난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패권을 장악해 이웃 민족을 지배하는 민족이 자기 서사시를 잃는 것과 다르게, 피지배 민족은 서사시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더욱 풍부하게 하면서 민족적 자부심 고취의 근거로 삼았으므로, 그런 차이가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과연 그런가 검증하면서 문학사와 정치사의 상관 관계를 따져보기로 한다. 정치나 경제는 패권을 휘두르고 번영을 자랑해야 바람직하게 발전하고, 문학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발전의 단계에 맞추어 형성되고 변천된다고 하는 것이 널리 인정되고 있는 견해이다. 정치를 더욱 중요시하는 제1세계의 관점이나 경제가 사회의 토대라고 하는 제2세계의 관점이나 그 점에서 견해차가 별반 없다. 그러나 구비서사시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발전과는 상반되고 역비례하기조차 한 발전 과정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총체적인 역사를 다시 이해하는 제3의 관 점을 마련해, 세계문학사 이해의 새로운 이론으로 삼아야 한다. 제3세계문학론의 관점은 제4세계문학론으로 이어져야 한다. 오늘날 제4세계의 민족이라고 일컬어지는 소수민족의 구비서사시는 세계 문학의 저변을 보여주는 자료이고, 외압에 대한 항거를 응결시킨 증언으로 가장 소중한 의의가 있다. 그래서 세계문학사 이해의 선입견을 뒤집고. 세계사를 뒤집어놓는다. 세계문학사의 이론 정립을 특별한 주제를 하나씩 잡아 차례대로 진척시켜서 책을 낼 때마다 문학사와 다른 영역의 역사를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는데, 여기서는 문학사와 정치사의 관계를 특히 중요시 한다. 서사시는 문학사와 정치사의 관계를 밝히는 데 아주 적합한 연구 대상이고, 민족 또는 민족국가끼리의 다툼이 일찍부터 심각하게 벌어진 동아시아에서 민족서사시는 특별히 중요한 의의를 가져, 연구를 긴장되게 하고 또한 풍성하게 한다. 이 책을 쓰기 위한 연구는 세계문학사의 이론을 정립하겠다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하기 전부터 해왔으며, 여러 차례 예비적인 작업을 했다 오랜 준비 기간과 시험적인 발표를 거쳐,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서울: 지식산업사, 1992)의 제2부 「서사시론」에 수록한 논문 세 편에서 첫 단계 작업의 결실을 내놓았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의 '구비시가구' 에서 서사시 비교론의 강의를 1990년 2학기 1992년 2학기, 1996년 2학기에 세 차례에 걸쳐 했다. 그렇게 하는 동안에 자료를 계속 보충했으며, 세계문학사의 이론을 정립하는 구상을 마련해서 무엇이 문제인가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세 번째로 한 강의에서는 이 책에 근접한 내용을 다를 수 있었다. 강의를 할 때마다 수강하는 학생들이 서사시의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씩 택해 연구 발표를 해서 비교연구의 확대를 위해서 소중한 기여를 했다. 세 번째 강의에서 한 학생들의 연구 발표는 이 책의 내용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 세 번째 강의를 할 때, 서사시 비교론의 전반적인 문제점과 내 자신이 한 기존의 연구에 관해서 살핀 다음에 한국, 일본, 아이누, 유구 (琉球) , 중국, 운남민족군(雲南民族群)등 좁은 의미의 동아시아서사시의 자료를 읽고 비교고찰을 하는 작업을 내가 학기 중간까지 하다가, 학생들이 그 밖의 서사시를 하나씩 다음과 같이 분담해서 고찰했다. 그 가운데 두 사람은 외국인이어서 , 자기 나라의 자료를 다룬 것 이크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외국인 학생은 국적을 괄호 안에 적는다. 노로브냠(몽골학생)(몽골), 조항욱(티베트 게사르), 임재욱(티베트 고승전) , 후지이 아사리 (일본학생) (유구) , 조회경 (타이) , 심우장(필리핀), 서정민(인도네시아 아체네스), 한길연(인도네시아 발리), 유준경(메조아메리카), 나선회(인도 라마야나), 이경하(인도 타밀), 이대효(인도 라자스탄), 김경화(이집트), 김현식(서북아프리카), 김형금(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 김아리 (페르시아) , 장유정 (러시아) , 배수찬(중세유럽) . 그렇지만 강의에서 다룬 내용이 이 책에서 취급하는 범위와 일치 하지 않는다. 니양가·하와이 ·바빌로니아서사시에 관한 논의는 강의를 하기 전에 이미 발표한 기존 연구에 포함되어 있었다. 월남과 키르기스의 서사시는 추가해서 다루었다. 세계 성자전에 관한 비교연구를 한 내용도 강의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여기 수록하지 않고 별개의 논문으로발표했다. 인도네시아 페르시아 러시아 ·유럽의 서사시는 구체적으로 고찰하는 대상으로 삼지 않고, 세계서사시 총괄론 에서만 거론한다. 일단 완성된 책의 원고를 1977학년도 1학기에 서울대학교 대학원의 '한국문학연구방법'의 수강생들에게 배부해 검토와 비판을 하게 하고, 학부의 '한국고전문학사' 강의에서 교재로 사용하면서 수정했다. 원고 검토를 해준 대학원생 가운데 위의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을 들면, 정진회 , 권정은, 김복영 , 정길수 이영화, 정천구, 손태도, 그리고 박사과정을 수료한 박종성이 있다. 학부의 강의를 듣고 과제를 제출한 학부 학생들 가운데 양승용·김지숙· 안용회 소래섭 ·강남욱 서준형 ·이안구 ·이준희 ·이은희 장두영 ·최지녀가 특히 소중한 지적을 해서 원고를 재검토하게 했다. 또한 그 원고를 여러 동학에게 전하고 비판과 수정의 의견을 청해서 개고를 위한 지침을 얻었다. 전경욱(고려대학) , 이헌홍(부산대학) ,천혜숙(안동대학) , 박경신(울산대학) , 현승환(제주대학) , 박경수(부산외국어대학) , 김주한(영남대학) 등 여러 교수가 그 요청에 적극 호응해서 자세한 검토 의견서를 보내주어 개고 하는 데 지침이 되게 했다. 그 모든 분들의 노고가 집결되어 이 책이 이루어졌으니 ,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학문은 독백이 아니고 대화이고 토론임을 실제 작업에서 입증하면서, 많은 공동연구자의 조력을 얻어 이 책을 완성했다. 세계문학사의 이론을 정립하는 다음 작업도 모두 그렇게 해야 감당해낼 수 있다. -------------------------------------------------------------------------------- 1) 이하 몇 단락 외 논외는, 1797년 7월 20일 국민대학교에서 한국비교문학회 주최로 열린 동아시아비교문학 학술회의에서 한 나의 발표 「동아시아 학계의 서사시 인식」에 대한 질의를 받고서 필요하다고 절감해 보충해서 쓰게 되었다. 그때 질의를 해준 차봉회, 전해자 교수. 그리고 성명을 기억하지 못하는 다른 한 분에게 감사 드린다. 2)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서울: 지식산업사. 1792)의 '제2부 서사시론' 에 수록한 논문 세 편 서사시론과비교문학」. 「장편서사시의 분포와 변천」, 「서사시의 전통과 근대소설」에서 그 작업을 했다. 이 책은 거기서 한 작업을 근거로 해서 시작하면서. 막연한 착상을 구체화해서 입증하고, 미비 사상을 대폭 수정하고 보안하는 구실을 한다 3) 「한국소설의 이론」(서울: 지식산업사, 1777)의 「자아와 세계의 소설적 대결에 관한 시론」에서 한 작업이다. 4) 터키, 카자크. 우즈배크. 키르기스.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멘, 위구르 등의 집단으로 나누어wu 있 는 터키계 민족을 총칭해서 '터키민족군'이라고 일컫기로 한다. 영어로 말할 때에는 터키민족군 전체는 'turkic'이라 하고, 터키공화국의 터키인은 'turkish'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그 둘을 구별해서 일컫기 어려우므로. '터키민족군'과 터키'를 구별해서 쓴다. 차례 시작하는 말 취급 지역 분포 개념도 서 장 :동아시아 구비서사시 연구의 의의 1. 머리말 2. 세계문학 구성의 단위에 관한 새로운 이해 3. 동아시아 구비서사시의 가치 4. 마무리 제 1 장 제주도 1. 머리말 2. 신앙서사시 3. 창세서사시 4. 여성영웅서사시 5. 남성영웅서사시 6. 신앙비판서사시 7. 성자서사시 8. 생활서사시 9. 마무리 제 2 장 한국 1. 머리말 2. 신앙서사시 3. 창세서사시 4. 여성영웅서사시 5. 남성영웅서사시 6. 성자서사시 7. 신앙비판서사시 8. 생활서사시 9. 마무리 제 3 장 아이누, 유구, 만주 족, 운남민족군 1. 머리말 2. 아이누 3. 유구 4. 만주족 5. 운남민족군 6. 총괄논의를 위한 중간 점검 7. 마무리 제 4 장 중국, 일본, 월남 1. 머리말 2. 중국서사시론의 문제점 3. 한국과의 비교를 통한 검증 4. 오어(吳語)서사시의 독자적 영역 5. 일본서사시 부재론에 대한 의문 6. 일본서사시를 찾을 수 있는 단서 7. 왕권신화 고착화와 서사시 배격 8. 중세 이후오늘날까지의 사정 9. 월남의 경우 10. 논의의 확대와 일반화 11. 마무리 제 5 장 몽골, 티베트, 키르 기스 1. 머리말 2. 몽골 3. 티베트 4. 키르기스 5. 유목민족의 불교미술과 서사시 6. 마무리 제 6 장 필리핀, 타이, 타밀, 라자스탄 1. 머리말 2. 서사시의 흉풍에 관한 이론 중간 점검 3. 논의의 자료와 방향 4. 필리핀 5. 타이 6. 타밀 7. 라자스탄 8. 마무리 제 7 장 니양가, 하와이, 끼체, 바빌로니아 1. 머리말 2. 니양가 3. 하와이 4.끼체 5. 바빌로니아 6. 논의의 일반화 7. 마무리 제 8 장 세계 전체 1. 자료 확대 2. 세계서사시의 분포 3. 세계서사시의 변천 4. 서사시와 그 주변의 문학 갈래 마치는 말 이 책에 대한 서평이 이광일, <민족의 정치적 승패와 서시사의 풍성함 어긋난다>, <<한국일보>> 1997년 11월 8일자 (한국일보사); 김헌선, <제주무가로 세계문학 '신' 내림, <<문화일보>> 1997년 11월 20일자 (문화일보사); 김인환, <구비서사시의 세계지도>, <<서평문화>> 29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199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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