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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상원

	서거정 재평가에 관해 질문합니다.

한국문학통사를 보면 春日을 들어 서거정의 시풍을 富麗라고 규정합니다. 헌데 서거정의 四佳詩集엔 현실비판의식을 담은 애민시가 여러 편 나옵니다. 아래 서거정이 쓴 兔山村舍錄田父語, 寒夜吟, 田家行 세 편을 올립니다. 토산(兎山)의 촌사(村舍)에서 농부의 말을 기록하다. 나의 집은 불암산 기슭에 있어 / 我家佛巖下 이웃이 모두 서너 집쯤 된다오 / 傍鄰三四屋 땅이 척박하여 다 묵은 토지라서 / 地薄皆荒田 농사를 짓자도 자갈이 절반인데 / 耕治半沙礫 거년엔 관에서 토지를 몰수하자 / 去歲官沒田 아전들은 호활한 자만 편들어서 / 吏胥右豪猾 가난한 집은 송곳 세울 땅도 없이 / 貧家無立錐 공연히 텅 빈 집만 있을 뿐이라오 / 空餘懸磬室 또 근근이 묵은 땅을 일궈보지만 / 僅僅起廢丘 흉년이 들어 납세하기도 부족한데 / 年荒稅不足 아전들은 날로 와서 독촉을 하니 / 吏來日徵督 호령이 하도 열화같이 엄한지라 / 令嚴如火烈 살 도려내고 부스럼도 못 고친 채 / 剜肉未醫瘡 도망가서 산골짜기에 숨어 있자니 / 逃竄匿崖谷 굶주린 불은 창자를 볶는 듯하고 / 飢火煎腸肚 얼굴빛은 날로 검어져만 갔다오 / 顔色日犂黑 땔나무를 하러 산중에 들어가면 / 採薪入山中 산중에는 땔나무가 많이 있는데 / 山中盛薪棘 집에 송아지가 한 마리 있긴 하나 / 家有黃犢兒 일년 내내 굶주려서 뼈만 앙상해 / 終年空復骨 나뭇짐도 실을 수 없는 지경이라 / 䭾載亦不能 한 걸음에 두 번씩을 자빠지므로 / 一步二顚踣 내가 친히 등에 지고 어깨에 메서 / 行行親負荷 두 어깨의 살이 발갛게 멍든 채로 / 兩肩赬已肉 저물녘에야 성안에 들어오는데 / 日暮始入城 길에서 고약한 모리배를 만나면 / 路逢隴斷客 추호를 다투어 깎고 또 깎아대니 / 折閱入錙銖 쌀은 귀하고 품삯은 낮기만 하네 / 米貴賤估直 그래도 생각하면 내 집 열 식구가 / 尙念十口在 부르짖으며 먹여주길 기다리거니 / 嗷嗷待哺啜 한 되든 한 말이든 어찌 논할쏜가 / 升斗何足論 아쉬운 대로 기갈이나 달래줘야지 / 聊以慰飢渴 돌아와서는 처자식과 마주하여 / 歸來對妻兒 점차로 죽이라도 먹게 되었는데 / 稍亦得饘粥 이런 방법으로 생활을 하다 보니 / 以此作生理 생활이 참으로 가엾기 그지없었네 / 生理眞可惜 그런데 요즘엔 호강한 권세가의 / 近來豪勢家 권리가 나무와 돌에까지 미쳐서 / 權利到木石 오만 산을 제 땔나무 밭으로 삼아 / 籠山作柴圃 남이 나무하고 꼴 베는 걸 금하니 / 禁人之樵牧 서쪽 집은 땔나무 한 번 했다 하여 / 西家採一薪 멋대로 매 때려 피가 철철 흘렀고 / 鞭韃恣流血 동쪽 집은 소가 밭을 밟았다 하여 / 東家蹊過牛 부자가 함께 포박까지 당했거니와 / 父子遭縶縛 공연히 백성의 재물을 약탈하여 / 公然掠民財 낫과 도끼까지 다 뺏어버렸다오 / 鎌斧盡漁獵 초목은 산택에서 절로 나는 거라 / 草木生山澤 천지 사이의 공공한 물건이거늘 / 天地之公物 서민은 유독 무슨 죄가 있길래 / 小民獨何辜 그 은택도 입지를 못한단 말인가 / 亦不蒙其渥 국가가 귀근한 신하를 중히 여겨 / 國家重貴近 작위 높여주고 녹봉 후히 주거늘 / 尊位厚其祿 어찌하여 자잘한 이끗을 좇아서 / 胡爲逐小利 불인하기 이 지경에 이르렀을꼬 / 不仁至此極 군자는 절의를 숭상하는 사람이라 / 君子尙節義 이걸 보면 깊은 생각에 잠기겠지 / 見此欲嘔殼 아 우리 가엾은 백성들은 / 嗚呼我民生 어떻게 국은을 입을꼬 하네 / 何以得生恩 나는 지금 이 말을 듣고 나서 / 我今聞此語 한밤중에 홀로 흐느끼어 우노라 / 中夜獨嗚咽寒夜吟 차가운 창문 언제나 겨울밤은 길기도 해라 / 寒窓故故冬夜永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쳐 천기도 나쁘구려 / 風饕雪虐天氣惡 지장은 하도 엷어서 한기를 가리지 못하니 / 紙帳薄薄未遮寒 세 폭 썰렁한 이불은 무쇠처럼 빳빳해졌네 / 三幅冷衾堅似鐵 은자는 홀로 앉아 근심으로 잠 못 이룰 제 / 幽人獨坐耿無寐 성긴 수염엔 고드름이 겹겹으로 얼어붙고 / 疎髥颯爽層氷結 차사발과 약단지는 꽁꽁 얼어 차디차며 / 茶甌藥甁凍不溫 탁주 담은 질동이는 얼어서 터질 것 같네 / 瓦盆濁酒寒欲裂 종아이는 옷이 다 해져 완전한 바지가 없고 / 童奴衣鶉無完裙 여자종은 터진 적삼에 버선도 못 신었구나 / 小婢破衫足無襪 동쪽의 이웃집은 부자이면서도 인색한데 / 東鄰有家富且慳 스스로 말하길 일생에 추위를 모른다 하네 / 自言一生不識寒 범 살쾡이 가죽 장막을 겹겹으로 두르고 / 虎幕狸帳襲重重 눈에 가득 붉은 비단은 여기저기 흩어졌고 / 滿眼花罽紅猩鬆 몸에는 검은 담비 갖옷을 뒤집어 입고서 / 身上倒披黑貂裘 좋은 술 조용히 마시어 봄기운 음미하고 / 穩斟美酒生春柔 원앙장 둘러쳐 부부 침대 따뜻이 하고서 / 鴛鴦帳暖合懽牀 긴긴밤이 길고 또 길기만 원할 뿐이라네 / 但願長夜長復長 아 우리는 추운 밤이 이렇게도 더디거니 / 嗚呼噫嘻寒夜遲 이런 고통을 부자가 어떻게 알 수 있으랴 / 此苦富家寧得知 그대는 못 보았나 궁문에 딱따기 치며 야경하는 자는 / 君不見宮門虎柝守寒更 왼손엔 북을 들고 오른손엔 징을 든 채로 / 左手執鼓右手鉦 철갑옷에 얼음 얼고 살과 뼈가 끊어질 제 / 鐵衣生氷肌骨折 하룻밤이 일 년 같아 날도 얼른 새질 않네 / 長夜如年天未明 부자와 빈자의 고락은 월등히 서로 다르니 / 兩處苦樂迥不同 만물 창조하는 하늘이 되레 공변치 않구려 / 天工造物還不公 나는 지금 한밤중에 수없이 탄식하면서 / 我今中夜三嘆息 슬피 부르짖는 게 찬 귀뚜라미만 같구나 / 哀吟啾咽如寒蛩田家行 농가여 농가여 즐거운가 즐겁지 못한가 / 田家田家樂未樂 온 집안이 고생고생 농사에 힘을 다하여 / 一家辛苦皆仰力 늙은 아비는 백발로 친히 쟁기질을 하고 / 主翁白髮親扶犁 큰아들 작은아들은 모두 논을 매 가꾸네 / 大兒小兒皆耕耨 거년엔 벼를 심었으나 토질이 척박하여 / 去年種粟田力薄 조세 충당과 상환곡 납부에도 부족했는데 / 充租納糶猶未足 금년엔 차조를 심었지만 수재 한재로 인해 / 今年種秫因旱澇 한 톨도 수확 못하니 목숨이 실낱같구려 / 一粒不收命如繰 남지의 마름과 연실로도 배를 못 채우는데 / 南池菱芡猶未飽 어젯밤엔 부첩에다 청묘전을 징수하네 / 昨夜府帖徵靑苗 동쪽 이웃에 가서 송아지를 팔려고 하니 / 欲向東隣賣黃犢 송아지의 등은 헐고 발굽은 다 깎이었네 / 黃犢背瘡蹄盡斲 발굽이 다 깎였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 蹄盡斲可奈何 문전에서 아전은 화급히 재촉해 대는걸 / 門前催吏如火急 질문입니다. 서거정이 쓴 이런 시를 놔두고, “특별히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없는 듯한 시에 근거 있는 용사와 묘한 재주가 깃들게 하는 것을 장기로 삼았다. 절실한 체험이나 호소해야할 사연은 오히려 천하다고 여기고, 태평성대의 분위기에 젖어들게 하는 데 힘썼다”고 단언하는 것은 일면적인 평가가 아닐까요? 서거정 역시 당대 민생의 어려움에 관심을 갖고, 현실 비판의식을 지닌 지식인이라 볼 수는 없는지요? IP Address : 211.114.55.17